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나나’는 1879년부터 다음해까지 90회에 걸쳐 일간지 <보르테츠>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나나’는 극장의 여배우로 활약하다가 스스로 창녀로 전락해버리는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풍만한 육체와 아름다운 미모로 연극배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탁부인 어머니와 기와장이였던 아버지와 살았던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가난한 시절에 가져보지 못했던 화려한 생활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갖게 됩니다. 파리의 시궁창에서 독을 묻혀 나르는 독파리 나나의 성적 매력을 가진 육체덩어리에 은행가, 백작, 신문기자, 청년 장교, 갓 중학교를 졸업한 소년 등 숱한 사내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바쳐 나나의 사랑을 얻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쾌락의 포로가 되어 가산을 탕진하고 파멸되어 버립니다. 쾌락을 찾아 상한음식에 파리 떼가 꼬이듯 그녀 주위로 몰려든 사내들은 뼛속까지 빨아 먹힙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음탕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즐기던 나나 역시 왕궁처럼 화려한 거실에서 결국 천연두에 걸려 죽어갔습니다. 나나의 마지막 모습은 소설 속에서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비너스는 썩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궁창이나 길거리에 내버려진 상한 고깃덩이처럼 썩고 있었습니다.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숱한 사람을 해친 독소가 마침내 스스로의 얼굴을 천연두로 썩게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를 좇는 시대입니다. ‘심심한 천국보다 즐거운 지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꿀 냄새를 맡고 몰려든 파리 때처럼 넋을 잃고 쾌락에 파묻히다가 날개까지 젖어 버려 다시는 날지 못한다 해도 그 속에 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욕망 중의 하나는 쾌락입니다. 쾌락은 마약 성분이 있어 계속 유지하려면 쾌락을 주는 것들을 끝없이 찾아 다녀야 하고 더 강력한 것을 요구합니다. 쾌락은 사람의 손에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고 사람을 노예로 삼고 싶어 합니다.

쾌락의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도취요, 혼신을 맡기는 행위가 될 수 있어 그 안에는 시간도 세월도 잊을 수 있습니다. 쾌락에 취하면 권태를 덜게 하는 체험과 쾌락의 묘약을 사기 위해 돈을 얼마든지 지불합니다. 그러나 부나비가 불빛에 취해 불꽃 주변을 돌지만 결국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불에 타 죽고 말듯이 쾌락은 가장 완전하게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쾌락은 쾌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허탈을 늘 꼬리표로 달아 줍니다. 양심을 외출시키는 쾌락은 이슬방울처럼 덧없고 결국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욕망의 덧에 방치되면 삶은 파괴되고 맙니다. 돈으로 쉽게 재미를 사고 쾌락으로 지루함이 추방될 것같지만 쾌락은 임시적인 아편의 역할을 할 뿐 습관이 되면 파멸의 독약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쾌락은 갈수록 약해지고 쾌락 욕구는 갈수록 강해져 다시 권태와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강도 높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하지만 쾌락은 신기루와 같아 늘 강박관념과 공허감을 주는 가짜 신에 불과합니다.

쾌락의 노예가 되면 결국 자기 생명을 갈가 먹힙니다. 진(秦) 나라부터 청(淸) 나라말까지의 중국 역대 황제들 평균 수명이 마흔 살도 못되는 39.2세였습니다. 그 이유로서 10대 전반부터 성 생활을 시작, 육림(肉林)속에서 탐닉한 때문이요, 또 음약(淫藥)을 상복하여 비독(批毒)이 축적된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한(前漢)의 원제(元帝)는 후궁이 2천 명이었고 당(唐)의 현종(玄宗)은 양귀비를 비롯, 후궁이 4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帝國)의 황제들도 네로, 가리글라, 티베리우스, 도미티아누스, 헤리오가바루스 등 변태 성욕자가 속출한 때문인지 평균 수명이 37세로 조선 왕조 시대 왕들 평균 수명 43.4세보다 못합니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프린츠홀른은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지식의 축적으로 머리통만 커지고, 자기위주로만 살기에 남을 배려하는 심정공간인 가슴이 사라진 데다, 말초 감각만 발달하여 국부가 커진 기구한 몰골의 현대인을 프린츠홀른 인간이라 했습니다.

쾌락만 추구하면 쾌락의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사사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에서 쾌락을 찾다가 눈이 뽑힌 것처럼 눈이 가리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쾌락 방해꾼이나 기쁨 파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았던 솔로몬은 그 모든 쾌락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참된 쾌락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 55:2-3). 쾌락의 한계, 쾌락의 종말은 진정한 기쁨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지루함과 갈증을 해결받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 참 기쁨을 안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라고 고백했습니다. 쾌락주의자인 바이런은 인생의 말년을 우울하게 보내며 "인생은 벌레같은 것이야. 늙음과 슬픔 앞에서는 쾌락도 무용지물이다. 나는 지금 심히 외롭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자 살자 쾌락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쾌락의 수명은 길지 않습니다. 쾌락의 종말은 ‘허무와 죄악’ 그리고 `파멸'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섬기는 언어 중에서-